제 2권 | 통변론
第二卷을 펴면서
宇宙의 公道運動은 곧 氣의 運動이다. 氣의 運動은 秩序가 正然하면서도 淸濁의 氣가 混雜되어 있다. 淸氣는 濁物에 섞여 混用運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氣가 뭉쳐 形象을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氣가 흩어지니 形象이 사라지는 反復運動을 繼續하고 있다. 이것은 佛敎의 輪廻法則과 같은 理致이며 自然法則의 運易인 것이다.
濁氣가 뭉치면 物慾이 생기고 淸氣가 뭉치면 物慾이 없는 것이지만, 人間은 濁物인 肉身과 淸氣인 精神의 兩質로 이루어진 氣의 形象이므로 慾心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慾心만으로는 慾望을 이룰 수 없는 것은 氣의 公道運動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는 證據이다. 다시 말하면 宇宙의 氣가 머무르고 있지 않으므로 氣를 잡거나 慾心대로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聖賢들은 自然의 法則에 逆行하지 않고 順理대로 살아가는 智慧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 人間은 누구나 自己 마음대로 世上에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父母란 因緣에 의하여 태어난 것뿐이다.
世上에 태어나면 氣의 盈虛로 因하여 일어나는 榮枯盛衰에 따라 他意半 自意半으로 生滅의 法則을 解脫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各自가 自己의 任意대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社會는 蠻勇과 虛慾으로 自己 慾望에 끝없이 陶醉되어 他人은 存在할 수도 없고 혼자만 살아가는 世上이 될 것이다. 世上에 혼자서는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이러한 法則은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宇宙의 모든 生命은 牽制勢力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人間도 例外가 될 수 없으며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기 욕심대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試鍊과 苦痛을 참고 살아가야만 한다. 苦痛과 試鍊은 變化를 追求하는 根源이며 苦痛 그 自體는 殺과 같다. 그러므로 殺이란 天地의 氣가 運易하면서 淸濁의 氣가 調和를 이루면 吉殺과 같은 것이고 調和를 이루지 못하면 凶殺과 같은 것이다. 또 五行의 合은 有情을 뜻하고 刑沖破害는 無情을 意味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人間은 누구나 苦痛을 싫어하고 幸福의 慾望을 追求하기 때문에 吉殺을 좋아하고 凶殺을 싫어한다. 그런고로 殺에 대한 구구한 持論이 많이 나오게 된 것이다. 十干과 十二支가 서로 만남으로서 이루어지는 불합리한 作用과 합리한 作用을 凶神 혹은 吉神이라고 말을 하며 이것을 모두 神殺이라고 한다.
吉殺이 125개나 되고 凶殺이 120여 개나 된다고 하니 어떤 殺은 10여 개씩이나 吉凶이 함께 이름 붙여진 것이 있다. 이런고로 四柱를 鑑命함에 있어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古書에 이르기를 『運命을 鑑命함에 있어서 神殺은 不論한다』고 하였으며 『五行의 支藏干 및 生剋關係를 綿密히 살핀다면 어찌 알지 못함이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神殺이란 五行의 相生 相剋 및 支藏干의 作用 그 自體가 어렵고 尨大한 까닭에 쉽게 代辯해 보는 斷面的인 方便에 不過하다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殺이란 함부로 論한다면 根本을 모르는 所致이며, 이는 곧 나무의 뿌리 및 줄기를 모르고 枝葉만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四柱를 鑑命할 때 五行을 주의 깊게 觀察하여 綜合的인 通辯을 하여야 할 것이다.
壬申年 孟夏 蠶室 自宅에서
淸觀 金元熙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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